지금, 왜 이 전환이 시작됐나
2024년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일평균 결제 거래량은 약 270억 달러를 넘어섰다. 비자(Visa)·마스터카드의 일평균 결제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미국은 2025년 'GENIUS Act'를 통해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제도화했고, 한국도 같은 해 디지털자산기본법 시행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결제 규모는 커졌지만, 정작 스테이블코인을 실제 거래에 쓰려면 통화 간 교환—즉 온체인 외환(FX)—이 필수다. USDT를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EURC로 바꾸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으면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수단이 아니라 보유 수단에 그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 자동화 마켓 메이커(AMM) 방식의 한계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고, 인텐트(의도,intent)-솔버(해결안 제공자, solver) 아키텍처가 그 대안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AMM에서 인텐트로 — "셀프 주유소"와 "배달 앱"의 차이
항공편을 예약한다고 상상해보자. 항공사에 전화하지도 않고, 연료 계약을 협상하지도 않고, 항공 교통 관제를 조율하지도 않는다. 앱을 열고 "금요일에 서울에서 도쿄로 가고 싶어"라고 말하면 된다. 나머지는 시스템이 처리한다.
지금까지 온체인 자산 교환은 그 반대였다. 유니스왑(Uniswap) 같은 AMM 중심 구조에서는 사용자가 직접 어느 풀에 유동성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슬리피지를 감수할지, 어떤 체인에서 실행할지 모두 결정해야 했다. 마치 탑승 전에 항공기 정비 매뉴얼과 FAA 규정을 모두 이해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일종의 "셀프 주유소" 모델이다.
문제는 규모가 커질수록 AMM의 비효율이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100억 원 규모의 USDT→USDC 스왑을 단일 AMM 풀에 던지면 슬리피지가 0.3~0.5%까지 발생한다. 10bp(0.1%)가 '비싼 수준'으로 취급되는 기관 FX 시장에서 이는 용납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인텐트 기반(Intent-based) 모델은 이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사용자는 더 이상 "어디서,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지 않는다. "솔라나에 USDC 500개가 있다. 이더리움 지갑으로 ETH 1개를 받고 싶다"처럼 원하는 결과(조건)만 정하고 서명하면 된다. 경로를 지정하지 않고, 유동성을 관리하지 않고, 결제를 조정하지 않아도 된다. 결과는 사용자가 결정하고, 나머지는 시스템이 알아서 처리한다.
"실행 먼저, 정산 나중" — 패러다임의 핵심
인텐트 기반 시스템이 기존 브리지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순서에 있다.
전통적인 크로스체인 브리지는 엄격하고 순차적인 흐름을 따른다. 자산이 소스 체인에 잠기고, 암호학적 증명이 생성·검증된 후에야 목적지 체인에서 자금이 해제된다. 모든 단계는 다음 단계가 시작되기 전에 암호학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수학적 원리가 정확성을 보장하지만, 안정성에는 대가가 따른다. 바로 지연 시간이다. 초기 L2 브리지에서는 며칠이 걸리기도 했고, 오늘날에도 수초~수분의 대기가 발생한다.
인텐트 시스템은 이 모델을 완전히 뒤집는다.
실행이 먼저 이루어지고, 정산은 나중에 이루어진다.
암호학적 최종성을 기다리지 않고도 자금을 즉시 수령할 수 있으며, 검증은 백그라운드에서 비동기적으로 처리된다. 기존 브리지는 시스템이 반응할 때까지 사용자가 기다려야 했다면, 인텐트 기반 시스템은 사용자가 다른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한다.
중요한 것은, 인텐트가 암호학적 보장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그 보장을 정산 계층으로 옮기는 것이다. 사용자는 솔버의 유동성을 바탕으로 즉각적인 실행을 경험하고, 암호학적 검증은 그 이후에 이루어진다.

CoW·UniswapX·Across가 보여준 인텐트-솔버의 교과서
의도-솔버 구조는 이미 온체인에서 충분히 검증된 모델이다. 아래 세 프로토콜은 이름만 다를 뿐, 공통된 패턴을 공유한다.
| 프로토콜 | 솔버 명칭 | 핵심 차별점 | 주요 사용 사례 |
| CoW Swap | 솔버(Solver) | 반대 주문 간 P2P 매칭(Coincidence of Wants)으로 수수료 최소화 | 대규모 스테이블코인 간 스왑 |
| UniswapX | 필러(Filler) | CEX·온체인 풀·자체 재고를 통합 활용, 가스비를 사용자가 직접 부담하지 않음 | ETH↔스테이블코인 등 범용 스왑 |
| Across Protocol | 릴레이어(Relayer) | 릴레이어가 목적지 체인에 먼저 자금 지급 후 정산, 크로스체인 속도 극대화 | 체인 간 스테이블코인 이동·교환 |
세 프로토콜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사용자는 인텐트만 제출하고, 거래 실패·경로 선택·가스비 최적화는 솔버가 책임진다. 솔버는 스프레드·수수료에서 보상을 가져가고,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효율이 높아진다. 경제적으로 보면, 솔버는 전통적인 브리지 운영자보다는 **고빈도 유동성 공급자(마켓메이커)**에 더 가깝다.
실제로 CoW Swap의 경우, 동일한 거래를 일반 AMM에서 실행했을 때 대비 평균 0.2~0.4%의 가격 개선 효과가 보고된 바 있다. 100억 원 거래라면 2,000만~4,000만 원의 비용 차이다.
속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 3가지 트릴레마
크로스체인 전송에서 단축되는 매 밀리초는 어딘가에서 비롯된다. 속도는 매혹적이지만, 공짜가 아니다.
실제로 크로스체인 인프라에는 동시에 최적화할 수 없는 세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 엄격한 암호학적 최종성 → 느리다
- 즉각적인 사용자 경험 → 유동성이 필요하다
- 풍부한 유동성 → 솔버 집중화를 촉진한다
전통적인 브리지는 최종성을 극대화한다. 의도 기반 시스템은 속도를 극대화한다. 유동성 집중은 조용한 압력 지점이 된다.
이 트릴레마는 각 프로토콜의 아키텍처 선택에 그대로 반영된다. Across처럼 인텐트 기반으로 설계된 시스템은 수 초 내 실행이 가능하다. 반면 Stargate의 버스 모드처럼 배치 처리 방식은 비용을 절감하는 대신 지연 시간이 늘어난다. Circle의 CCTP는 소각-발행(Burn & Mint) 구조로 유동성 풀 자체를 배제하지만, 특정 자산에만 적용된다. Chainlink의 CCIP는 프로그래밍 가능성과 강력한 보안을 우선시하는 메시징 레이어로, 단순 토큰 전송이 아닌 복잡한 크로스체인 로직 처리에 강점이 있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전송 규모, 리스크 허용 범위, 사용자 기대치, 자산 유형에 따라 적합한 아키텍처가 달라진다. 기관 재무 부서는 CCIP 방식의 암호학적 보증을 선호할 수 있고, 일반 사용자는 Across 방식의 빠른 속도를 선호한다.

스테이블코인 FX, 왜 인텐트-솔버가 잘 맞나
스테이블코인 간 교환은 사실상 외환(FX) 거래다. USDT↔USDC, USDC↔EURC처럼 서로 다른 통화·발행사·체인 간 스왑은 슬리피지와 수수료에 극도로 민감하다. 수십억~수백억 단위의 대규모 거래에서는 몇 bp 차이가 곧 손익을 가른다.
이 지점에서 인텐트-솔버 모델의 장점이 부각된다. AMM처럼 항상 깊은 풀을 유지할 필요 없이, 솔버가 CEX, OTC, 기관 간 직거래 등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유동성을 조달한다. 복수의 유동성 소스를 나눠 활용하고 P2P 매칭까지 동원해 가격 충격을 최소화하며, 동일 거래 기준 AMM 대비 슬리피지를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Wintermute, Jump Crypto 같은 글로벌 마켓메이커가 솔버로 참여하면서, 일반 사용자도 사실상 기관급 환전 서비스를 이용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Ezys FX —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FX 정산 레이어"
수호아이오는 Ezys FX를 "차세대 스테이블코인 FX·정산 인프라"로 정의한다. 요약하면, 은행·핀테크·환전 사업자가 솔버로 참여하는 인텐트 기반 FX 네트워크다.
누가 인텐트를 보내나
Ezys FX에서 인텐트 제출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 결제 앱·PG사, 증권사·거래소의 토큰 증권 플랫폼, 글로벌 결제·송금 핀테크, 유통·플랫폼 기업 등이다.
예를 들어 일본인 관광객 대상 결제 서비스를 생각해보자. 이용자는 엔화 기반 카드로 결제하고, 한국 가맹점은 원화 정산을 원한다. 이때 백엔드에서는 스테이블코인 기반 FX가 발생한다. Ezys 구조에서 PG사가 던지는 인텐트는 이렇게 단순해진다.
"오늘 들어온 결제 중 5억 원 상당 금액을 30초 안에 KRW 스테이블코인으로 정산해줘. 최대 수수료는 0.3%, 스프레드는 0.1% 이내."
누가 솔버가 되나
Ezys FX에선 은행·증권사·환전 사업자·글로벌 LP가 솔버 역할을 맡는다. 인텐트가 들어오면 각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호가와 조건을 자동으로 제시한다.
- A은행: "0.09% 스프레드, 5초 이내 정산"
- B핀테크: "0.05% 스프레드, 20초 이내 정산"
- C글로벌 LP: "0.03% 스프레드, 40초 이내 정산"
Ezys는 인텐트 발신자가 사전에 등록한 정책(속도 우선 vs 가격 우선)에 따라 최적 솔버를 선택한다.
기존 대비 실질적인 이점은 무엇인가
기업 입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세 가지다.
첫째, 정산 속도다. 기존 은행 간 해외 송금은 T+1~T+2(1~2영업일)가 표준이다. Ezys FX에서는 수십 초~수 분 내 정산이 가능하다. 결제 사업자 입장에서는 환 리스크 노출 시간이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진다.
둘째, 수수료다. 전통 은행 FX 거래는 스프레드 0.3~1.0% 수준이 일반적이다. 복수 솔버 경쟁이 발생하는 Ezys 구조에서는 0.03~0.1% 수준의 스프레드가 가능하다. 월 거래액 100억 원 기준으로 연간 수천만 원의 비용 절감 효과다.
셋째, 운영 복잡도다. PG사나 핀테크가 직접 체인·브릿지·거래소를 연동할 필요 없이, 인텐트 한 줄로 복잡한 FX 로직을 외부화할 수 있다.
유럽 토큰 증권까지 잇는 FX 허브
Ezys FX는 한국 내 결제·송금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수호아이오는 유럽 규제형 토큰 증권 거래소 21X와 제휴를 맺고,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유럽 토큰 증권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CoW·UniswapX가 온체인에서 하던 역할을, Ezys FX가 KRW·기관·규제 환경에 맞게 재구성해 수행하는 셈이다.
신뢰의 위치가 바뀐다 — 코드에서 자본과 경쟁으로
인텐트-솔버 아키텍처가 가져오는 변화 중 가장 과소평가된 것은 철학적 전환이다.
기존 브리지는 코드(암호학)에 신뢰를 뒀다. 수학적 증명이 곧 신뢰의 근거였다. 인텐트 기반 시스템은 신뢰의 위치를 옮긴다.
신뢰는 순수한 코드에서 자본과 경쟁으로 이동한다.
암호학적 안정성은 후순위로 밀리고, 경제적 유인이 전면에 부각된다. 솔버가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수학이 아니라, "이행하면 수익, 불이행하면 패널티"라는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다.
효율은 올라가지만, 새로운 리스크가 따라온다
인텐트-솔버 구조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리스크를 수반한다. 중요한 것은, 이 리스크들은 기존의 스마트컨트랙트 코드 감사(audit)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동성 리스크가 첫 번째다. 시장 불안 상황에서 솔버들이 자금을 회수하면, 계약 코드가 완벽하게 안전하더라도 실행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수 있다. 시스템이 '기술적으로는 문제없음'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작동 불가'인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불투명성도 문제다. 솔버의 실행 전략은 비공개다. 시스템은 유동성이 조용히 특정 솔버에게 집중될 때까지 외관상 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집중화 압력은 구조적 문제다. 자본력이 풍부한 솔버일수록 더 낮은 스프레드로 경쟁할 수 있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수 업체가 주문 흐름을 장악하는 현상이 심화된다. CoW Swap과 UniswapX에서 이미 소수의 전문 솔버가 전체 거래량의 80% 이상을 처리하는 집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들은 치명적인 결함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인텐트 기반 프로토콜을 소프트웨어로서뿐만 아니라 금융 인프라로서도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유동성 분배·솔버 집중도·경제적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 또한 핵심 지표가 된다.
업계가 이 딜레마를 완화하려는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솔버 다양성 정책(특정 솔버의 점유율 상한 설계), 최소 응찰 의무화(소액 인텐트에도 반드시 응찰하도록 하는 규칙), 스마트컨트랙트 기반 자동 패널티(이행 불이행 시 온체인에서 즉시 집행)가 그것이다.
표준화가 시작됐다 — ERC-7683의 의미
인텐트 기반 크로스체인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각 프로토콜마다 제각각이던 인텐트 포맷을 통일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이더리움 생태계에서 논의 중인 ERC-7683은 크로스체인 인텐트 프레임워크를 공식 표준으로 정의하고, 네트워크 간 상호운용성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표준화의 의미는 크다. 인텐트 포맷이 통일되면 사용자는 어떤 프로토콜을 사용하든 동일한 방식으로 인텐트를 제출할 수 있고, 솔버는 여러 네트워크의 인텐트를 단일 시스템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마치 다양한 항공사가 동일한 예약 시스템을 공유하는 것처럼, 인텐트 기반 FX 인프라도 공통 언어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경로"가 아니라 "의도"를 설계하는 시대 —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의도-솔버 아키텍처의 확산은 개발자·아키텍트의 역할도 바꾼다. 이제 핵심은 두 가지다. 어떤 의도 포맷을 정의할 것인가(통화쌍, 금액, 최대 스프레드, 마감 시간, 리스크 허용 범위, 규제 요건의 구조화), 그리고 어떤 솔버 네트워크를 설계·개방할 것인가(참여 자격, 호가 정책, 담합·리스크 감시 체계)가 핵심 설계 과제다.
이 글을 읽는 IT 기획자, 금융 IT 담당자, 핀테크 개발자라면 지금 당장 세 가지를 권합니다.
첫째, 우리 서비스의 FX 처리 구조를 파악하라. PG사·결제 플랫폼을 운영하거나 연동하고 있다면, 현재 스프레드·정산 시간·실패율을 수치로 기록해두는 것이 출발점이다.
둘째, 인텐트를 '정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라. "어떤 조건이면 이 거래를 수락하겠다"는 비즈니스 로직을 구조화된 인텐트 포맷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앞으로 FX 인프라 협상력의 핵심이 된다.
셋째, 솔버 네트워크 참여 가능성을 타진하라. 유동성이나 FX 역량이 있는 기관이라면, 솔버로 참여해 수수료·스프레드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도 검토할 시점이다.
크로스체인 인텐트는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니다. 사용자가 브리지·가스 토큰·최종성 기간을 이해하도록 강요하는 대신, 결과를 명시하고 복잡성을 시장에 위임하도록 하는 철학적 전환이다. 그 방향은 명확하다. 앞으로는 누가 더 정교하게 의도와 솔버 네트워크를 설계하느냐가 경쟁력이다. "배달 앱처럼 환전하는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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